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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장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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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장수는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와, 상하이를 중심으로 북경 홍콩 하문등의 중국과, 싱가폴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와,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쿠바 자메이카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등 이역만리 세계 곳곳에서 상투를 틀고 홍삼(인삼)자루를 메고 다니며 혈혈단신 홍삼행상으로 어렵게 끼니를 떼우던 조선의 “홍삼장수”들은, 안타까운 고국의 소식을 듣고 좀도리 쌀 모으듯 그 날 그 날 홍삼 판돈에서 조금씩 떼어 모아 “애국금”을 마련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국내외에서의 “홍삼독립운동”은 1937년까지 지속됩니다.(전주한옥마을에서 한옥독립운동이 일고 있을 때, 해외에서는 홍삼독립운동이 일고 있었습니다.)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독립운동 배후에 홍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조선총독부는 1922년 한반도와 중국에서의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본국 정부에 급전을 칩니다.
‘...고려인삼(홍삼)의 ...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이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홍삼과 한인 홍삼 장수에 대한 감시망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기 시작합니다. 1940년 조선총독부는 드디어 조선 땅에서 제조되는 모든 홍삼을 감시할 딱지를 만듭니다. 홍삼이 독립자금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등의 목적으로 홍삼에 붙입니다. 바로 그 감시 딱지 이름이 正官庄’(せいかんしょ;정관장)입니다. 정관장 딱지가 홍삼에 붙어 감시가 시작된 1940년 이후로는 홍삼 팔아 독립자금 마련하는 홍삼독립운동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홍삼장수는 독립운동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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